IBM Watson 연구소




IBM의 Research Division 하면 뉴욕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Thomas J. Watson Research Center(보통 Watson Lab이라 부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Silicon Valley에 위치한 Almaden 연구소, 스위스 쥬리히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쥬리히연구소로 나누어져 있는데 특별히 고체물리분야의 발전에 많이 공헌하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는 세계에서 우수한 기업연구조직들 가운데 하나다. 1973년 일본 출신 Esaki 박사가 tunneling diode 실험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위시해서 1986년과 1987년 연속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Binning과 Rohrer 박사의 scanning tunneling microscopy와 Mueller와 Bednorz박사의 고온 초전도체의 연구업적들이 IBM Research Division의 명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들 세 연구센터 외에도 IBM은 기업의 필요성에 의하여 설립되어진 일본 동경의 Tokyo 연구소, 중국 북경의 Beijing 연구소, 이스라엘의 Haifa 연구소, 그리고 Texas의 Austin 연구소들이 제 나름대로 특징을 지니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

우리말에서 '연구소'란 뜻이 막연하게 쓰여지고 있으나 영어에서는 research는 순수과학연구, development는 상품개발연구로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우리 Research Divison에서도 개발연구도 하지만 기초과학연구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소나 국립연구소와 같은 공공연구기관과는 달리 우리의 연구목적을 항상 IBM business에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다. 이 아홉개 연구소들의 총 책임자인 연구담당 부사장이 있는 곳이 바로 Watson Lab이다. 이 부사장자리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장사를 위주로 하는 직업경영인이 아니고 연구업적이 많은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해 왔다. 우수한 數物學者를 선택하는 이유는 IBM의 미래사업을 정확한 과학에 근거해서 생각하자는 IBM을 이룩한 Watson 父子 두 사람의 기업철학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초대 연구소장은 물리, 2대는 수학, 3대는 물리, 4대 5대도 물리전공이다. 이렇게 물리학자들의 leadership에 의하여 지난 50여년의 역사를 이룩해 왔다. 물리학자가 전기공학자만큼 전기회로를 알 수는 없고 또 재료공학자만큼 물질에 대한 지혜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computer technology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물리학자를 따라갈 수 있는 전공분야는 없다는 주장에서 나왔을 듯도 하다.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모든 교향악기들을 잘 연주하지 못해도 아름다운 교향곡을 창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A Research Division Famous for its Science and Technology and Vital to IBM"이란 표어가 우리 연구소의 운영철학을 잘 말해 주고 있다.

Watson Lab만 하여도 1000여명의 박사소유자 가운데 약 3백명 이상이 물리전공자들이다. 고체물리전공이 대다수이지만 천체물리나 입자물리를 연구하는 희귀족(?)들도 있다. Watson Lab을 대학원의 연장이라고 얘기들도 하지만 내 경험을 보더라도 처음 1년 동안 Watson Lab에서 배운 실질적인 산지식은 5년 동안 대학원에서 배운 양의 곱배로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대학원에서처럼 도서관을 찾는 것이 아니고 硏究所 안에서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동료로부터 그 사람의 평생 경험을 듣고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험에 의해 산지식이라 하겠다. 지난 20여년 동안 내가 듣고 배우고 익혀 온 Watson Lab의 생태 혹은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틀이 짜여 돌아가는 연구소 분위기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는지 computer 발전과정의 역사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IBM의 계산기 歷史는 1920년대의 주축상품이던 Hollerith punch-card 加算機 이다. 그러나 이 당시의 IBM 연구소는 R보다 D에 속한 상품개량이 주목적이었다. 二次世界大戰을 전후한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電子技術의 급격한 발전과 美蘇경쟁의 冷戰으로 인한 연방정부의 풍부한 자금조달이 Watson Lab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IBM business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대학에서의 기초과학연구를 통하여 computer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Watson사장의 뜻에 의하여 Columbia 大學 안에 Watson Scientific Computing Laboratory를 설립한다고 Columbia 대학총장과 함께 발표한 것이 1945년 2월 6일이며 이 날을 Watson Lab의 생일로 친다.

한 逸話에 의한 1940年代 初 Harvard 대학 수학과 대학원생인 Richard Aiken이 새로운 idea에 의한 computer 제작을 IBM에 제안해 왔고 이를 기꺼이 받아드려 만든 것이 1944년에 완성한 automatic sequence controlled calculator(뒤에 Mark-I이라 부름)가 IBM이 제작한 첫번째 computer이다. 길이가 15 m나 되고 무게가 무려 10톤이나 되었다. 이 ASCC를 Harvard 대학에 기부했는데 Aiken이 IBM기술자들의 공헌을 무시하고 자기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한 듯이 신문지상에 발표하여 Watson 사장의 노여움을 샀다고 한다. 그래서 Watson사장은 Mark-I보다 더 우수한 'calculator'를 만들라고 초대 Watson Lab 소장인 Eckert 박사에게 명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든 것이 1948년에 완성한 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SSEC)이다. 상품개발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만들어 본 것 뿐이었으나 성능면에서는 Mark-I을 휠씬 능가하였다. 이 SSEC가 당시 가장 빠른 연산속도를 갖고 있어 IBM안에서는 공용어인 calculator라고 부르기 보다 computer란 새 '애칭'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뒤에 이 SSEC 기술을 기초로 하여 처음으로 상품으로 시도한 것이 Model 603 Electronic Multiplier이고 그 뒤 고객으로부터 인기를 많이 얻은 Model 604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Watson Lab에서는 SSEC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더 빠른 computer 제작을 시도했다. 연방정부로부터 충분한 연구자금을 지원받으면서 해군병기연구소(Naval Ordnance Research Laboratory)에 납품한 NORC(Naval Ordnance Research Calculator)가 바로 2세대 computer라 할 수 있다. 20만개의 전자부품으로 조립되었고 1초당 1만 5천 연산회수란 세계기록을 가진 NORC가 1954년에 완성되었다. NORC가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Byron Havens가 새로 고안한 Havens microsecond delay 回路이다. 이 회로가 하는 일은 pulse signal들의 모양(shape)을 유지하게끔 계속 교정해주면서 pulse들 사이의 간격을 정확히 1 Ռsec씩 둠으로서 computer 안에서의 모든 연산작업을 동시에 일어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새로운 architecture가 뒤에 생산된 많은 computer들의 기본이 되었다. 또 한사람의 유명한 발명자는 John Lentz이다. 그의 단일 진공관 memory cell은 현대 DRAM cell의 조상이라 하겠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것은 현대 PC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책상 만한 computer를 진공관을 써서 만들었다. 기억장치도 진공관 memory에 보충하여 magnetic drum을 포함시켰고 input device로는 tape punch reader와 keyboard를 사용했다. 이 최초의 PC를 만든 해가 1948년이었다. 또 한가지 Lentz의 발명품은 현재 우리들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사용하는 computer의 enter key로 typewriter의 cursor를 사용한 일이다. 이렇게 당시 Watson Lab의 연구과제들은 전자기술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진공관 기억소자, 水銀 delay line, ferrite core memory, 그리고 궁극적으로 반도체 transistor 등등 많은 computer 부품들의 급격한 발전이 기존의 電子工學 以上의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idea를 computer 제작에 효율적으로 응용하기 위해서는 전자재료들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여기에 부응해서 Watson Lab에서는 固體物理硏究에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로 초창기 Watson Lab에서 일한 사람으로는 Thomas-Fermi potential로 알려진 영국출신 이론물리학자 Llewellyn Thomas, 자기공명실험에 공헌을 많이 한 Seymore Koenig 등이 있다. 특히 Thomas는 응용수학자로 computation쪽 computer 응용이 주전문이었지만 engineering쪽에서도 magnetic core memory를 처음 제안하는 등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1950년 200명의 연구원을 가진 Watson Lab이 4년 뒤인 1954년에 1440명으로 늘어나는 급격한 발전과정에 'growing pain'이 없을 수는 없었다. computer 제작에 치중하다 보니 기초과학을 위한 research가 아닌 electronics을 중심으로 한 development를 위한 연구소가 되어간다는 반대의견이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1955년 'Task Force'(IBM안에서 잘 쓰는 말로 Committee를 말함)가 형성되어 Watson Lab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느냐 하는'soul searching'을 하였다. 이 Task Force가 추천한 결론은 첫째 research는 development에서 독립하여 IBM사장에게 직접 보고할 것, 둘째 우수한 업적을 가진 유능한 과학자가 Watson Lab을 지휘할 것, 셋째 research는 IBM의 장래에 관련된 일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었다. 이 Task Force의 추천이 받아져 지금까지 Watson Lab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해군연구소에 근무하던 물리학자 Piore 박사가 초대 Research Director로 들어 온 것이 1956년, 이때부터 명실공히 기초과학연구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Columbia대학에 있던 Watson Lab과 뉴욕洲 Up-State에 있던 Electronics Lab을 통합하여 현재 위치로 이사한 것이 1961년이고 공식이름도 Thomas J. Watson Research Center라 불렀다.

뉴욕시 근교에 자리잡은 이유 중의 하나는 문화중심에 가까이 있으므로서 유능한 연구원을 誘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고 또 하나는 인근에 있는 많은 유명 대학들과의 빈번한 연구교류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한가지 문제가 된 것은 西部의 유명대학출신들이 東部로 이사오기를 꺼려해서 Watson Lab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San Francisco근교 San Jose에 세운 Almaden연구소이다. 마찬가지 뜻에서 Europe의 인재들을 誘致하기 위하여 정치영향을 받지 않은 스위스를 정하였고 스위스 안에서도 Einstein이 다닌 유명한 공과대학 ETH 근처에 Zuerich연구소를 세웠다. 첫 Director로는 computer의 선각자로 불리는 John von Neumann의 group 出身인 Ambrose Speiser인데 처음부터 기초과학연구를 중심으로 Zuerich Lab이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두 개의 Nobel상이란 수확을 얻었다고 얘기들 한다. 이와 반대로 Almaden연구소는 西部氣質을 살려 작은 창고에서 개발연구를 위하여 4명으로 1957년 시작하여 지금은 magnetic storage technology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의 연구소로 알려져 있다.

지난 50여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과학과 기술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해 왔으나 우리 Research Division에서 "Top 12"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연구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Mueller와 Bednorz에 의한 고온초전도체(1987년 Nobel 물리학상 받음), (2) E. Codd에 의한 relational database(1970년)-종래의 hierachical data- base에 비해 data access가 빠르고 쉽게 되었음, (3) 1993년 상품화한 PC의 micro- processor를 利用하여 만든 Scalable Parallel System, (4) John Cocke가 자기의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Architecture를 써서 만든 Model 801 Minicomputer(1980년)-현대 workstation의 기초가

됨, (5) Mandelbrot의 fractals (1970년)-자연만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fractal기하학을 정립하고 fractal algorithm은 computer image에도 응용됨, (6) R. Johnson에 의한 최초의 magnetic hard disk인 Random Access Method for Accounting and Control (RAMAC-1956년) - 1984년 미국기계공학회에서 historic landmark로 지정 받음, (7) Speech recognition-중국사람들한테 불가결의 문제, (8) Binning과 Rohrer에 의한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1981년 발명됐고 1986년 Nobel 물리학상 받음), (9) D. Thompson이 고안하여 magnetic disk drive에 쓰는 Miniature Thin Film Magnetic Recording Head (1979년), (10) R. Dennard이 발명한 DRAM-한국의 주요 반도체산업의 총아, (11) 현대판 LAN(local area network) 의 기초가 되는 Token Ring Technology 개발(1985년), 그리고 (12) J. Backus에 의한 FORTRAN (FORmula TRANslator) computer languag (1957년).

이렇게 많은 연구업적을 내었어도 Watson Lab의 운영철학이 애당초의 기초과학 편중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천해 왔다. 1980년대는 Development Lab들과 共同硏究機構인 Advanced Silicon Research Laboratory, Magnetic Research Institute 등을 설립하여 IBM의 주요기술개발에 직접 참여하였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IBM자체의 business뿐 아니라 다른 고객회사의 data processing에 관련된 문제들의 해결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IBM business에 더 깊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Research Division이지만 그렇다고 기초과학연구의 본분을 무시하거나 낮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연구원들이 기초과학분야의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고 있는 과제들이 단순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고 "Vital to IBM"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Watson 연구소 Research Staff 이영훈 (yhlee@us.ibm.com)]